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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복지) 백 세 인생, 축복인가 재앙인가?
입력 : 2025-04-02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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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에 잠긴 노인(빈센트 반 고흐)  ©

 

  나이 예순 아홉어쩌다 보니 이만큼 살아왔다예전 같으면 노인’ 소리 들을 나이지만요즘은 청춘이란다. “요즘 칠십은 환갑이지요.”라는 말이 위로인지 조롱인지 모를 때가 있다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노인은 이곳저곳이 아파야 정상이다.”

 

사실이다주변을 살펴보면 병원 안 가는 날이 손에 꼽히는 사람도 있다나도 이젠 치과에 가면 자연스럽게 묻는다. “이건 뽑고임플란트인가요?” 당연하다는 듯이 크라운을 씌우고이 하나쯤은 임플란트로 대신한다어쩌면 이것이 지금 우리 생태계의 순리다.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알 수 있다환자 대부분이 노인이다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그들의 얼굴엔 익숙한 체념이 스며 있다자식 걱정병 걱정돈 걱정웃을 일이 없다는 표정들.

 

의학이 발전했다고들 한다맞는 말이다위암도 초기에 잡고관절도 갈아 끼운다심장에 스텐트를 넣고백내장을 제거한다덕분에 ‘90는 이제 더 이상 희귀한 나이가 아니다우리 동네만 해도 구순 잔치를 준비 중인 집이 몇 곳 있다그런데 나는 문득 묻고 싶다그 긴 세월과연 삶의 질은 어떠한가?

 

구순을 넘긴 어떤 어르신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 발로 걷고내 손으로 밥 떠먹을 수 있으면 그게 복이지그렇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 지탱하는 거야.”

 

그 말을 듣고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그렇다인간의 삶은 움직일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밥을 먹고침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하루하루가 과연 삶일까과연 연명과 은 같은 뜻일까?

 

나는 요양원에 다녀온 적이 있다친구의 모친이 계셔서 함께 찾아뵈었다깔끔한 시설정돈된 침대친절한 간호사들표면만 보면 별문제 없어 보였다하지만 어르신들의 눈동자는 달랐다어딘가 공허하고불안했다누군가는 창밖만 하염없이 바라봤고누군가는 한자리에 앉아 종일 입을 다물었다.

 

요양원 한편에는 면회 일지를 적는 칠판이 있었다방문객의 이름과 날짜를 적는 표였다어떤 어르신의 이름 옆에는 한참 동안 아무런 기록도 없었다친구가 말했다.

 

저분은 자녀가 미국에 있대작년 한 번 왔다가 안 왔대.”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효도는 옛말이 됐다바쁜 세상각자의 삶이 우선이다자녀들은 부모를 요양원에 맡기고때론 안부 전화조차 잊는다아무도 비난할 수 없다그들도 살아내야 하니까.

 

나는 요즘 오래 사는 것이 두렵다백 세 인생이라지만그 마지막 20년이 존엄을 잃은 채 살아가는 시간이라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돈이 있어도자식이 있어도몸이 자유롭지 못하면 그건 감옥이다살아 있음이 아니라 붙들린 존재로 남는 것이다.

 

나는 아직 내 발로 걷고내 손으로 밥을 먹는다화장실도 스스로 간다이 당연한 일상이 하루하루 감사하다그러나 이 고마움은 오래 가지 않으리란 것도 안다지금의 이 건강이 천천히그러나 분명하게 무너져 가리란 것도 알고 있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마지막 내 삶은 어떤 모습일까누군가가 내 등을 두드리며 괜찮아요어르신이라며 위로할까아니면 조용히 잊힌 이름으로 침대 하나에 눕게 될까?

 

그래서 준비해야 한다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살다 가는 삶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는 삶나답게 살아왔듯나답게 떠나는 일.

 

나는 요즘 주변에 말한다.

 

내가 요양원 가게 되면너무 오래 기다리지 말고 웃으면서 보내줘내 삶은 내가 정리할 테니까.”

 

그 말을 듣는 이들은 웃지만나는 진심이다백 세 인생길수록 의미가 옅어진다면 차라리 짧고 선명한 삶이 낫다.

 

노인은 이곳저곳이 아프다그리고 그 아픔은 자연스럽다그러나 진짜 아픔은 육체가 아니라 마음이다쓸모없다는 자괴감외롭다는 허무함잊혔다는 서글픔그 고통을 견디는 것이야말로 노인의 용기다.

 

오늘도 약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한다이제는 어떻게 살까보다 어떻게 떠날까를 준비할 시간이다남은 삶이 길어질수록고독은 깊어지고의미는 흐려질 수 있다그래서 나는 욕심을 버리고자 한다오래 살기보다품위 있게 살기를.

 

백 세 인생이 모두에게 축복이 되지는 않는다때로는그것이 가장 조용한 재앙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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