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김창현 칼럼) 변강쇠뎐
변강쇠뎐
이번 남산국악당 무대는 전면에 세 폭 그림이 걸려있다.신윤복의 春畵圖인듯.한 폭은 둥근 달 뜬 산속에 옷을 반쯤 벗은 기생으로 보이는 여인이 서생과 月夜密會.다른 폭은 폭포 아래 堂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남녀 신발 두컬레만 섬돌에 놓여있다. 무대는 상징적이고 단출하다.골기와 낮은 흙담에 푸른 대 몇가지 섰고,담은 있되 가림이 없고,문은 있되 닫힘이 없다.한쪽에 탕건 흰 두루마기 차림 남정네가 낮고 간들어지게 해금 켜고 있고,그 옆에 거문고 아쟁 대금 고수가 있다.반대편엔 세모시 붉은 치마 흰 저고리 받쳐입은 봄비에 목욕한 제비같은 미녀들 月宮姮娥처럼 안숙선을 모시고 있다.
극이 안숙선의 도창으로 시작되자 옹녀가 등장한다. 원본 옹녀 묘사는 이렇다. ‘평안도 월경촌에 계집 하나가 있었는데,얼굴을 볼작시면 춘이월 반만 핀 도화가 귀밑머리에 어리었고,초생에 지는 달빛은 아름다운 눈섶 사이에 비치었다.앵두같은 고운 입은 비단 당채 주홍빛으로 세차게 꾹 찍은듯하고,세류같이 가는 허리는 봄바람에 하늘하늘하며,찡그리며 웃고 말하며 걷는 태도는 서시와 포사라도 따를 수 없었다...’
이 정도 여주인공 뽑기 힘들 터이다.그런데 옹녀를 보니 제대로 캐스팅 했다.도화살 가득한 얼굴,품에 으스러지게 껴안아 달라는듯 사내 쳐다보는 눈빛,애간장 녹이는 사쁜사쁜한 걸음걸이,요분질 도를 튼 듯 리드미컬 흔들리는 허리와 엉덩이 연기 일품이다.<나이아가라>의 몬로웍보다 <변강쇠뎐> 옹녀웍이 더 섹씨하다.현대는 이쁘다 개성미 있다는 전시대적 찬사보다는 쎅시함을 숭상하는 시대다.일본 가부끼나 중국 패왕별희와 달리 우리 옹녀는 단연 쎅스 심볼이다.
작품 스토리는 간단하다.평안도 淫女 옹녀 三南 잡놈 변강쇠 이야기다.옹녀는 들병장사 막장사 전전하며 살아보려고 노력하는데,강쇠는 윷놀이 쌍륙치기 장기 주먹질 술먹기 싸움하기 계집질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르고,지리산속으로 옮겨살다가,어느날 땔감으로 장승을 부시어 때다가 동티가 나서 죽는다.장례 치를 돈이 없는 옹녀는 장례 치러주면 누구라도 함께 살겠다고 선언한다.옹녀 차지하려는 승려 가객 초란이가 나타났으나,모두 강쇠놈의 저주로 사망한다.마지막에 용한 무당을 불러 굿을 하여 장례를 치르는 내용이다.
강쇠와 옹녀가 첫 눈에 서로 알아보고 일 벌리는 대목을 보자.
‘(중중모리)계집이 허락하여 둘이 손길 마주 잡고,바위 위에 올라가서 대사를 치르는데,신랑 신부 두 년놈이 履歷이 찬 것이라 이런 야단 없겠구나.멀끔한 대낮에 년놈이 홀딱 벗고 장난할제,天生陰骨 강쇠놈이 여인의 두 다리 번쩍 들고 玉門關을 들여다 보는 것이었다.’ 이때 변강쇠 가로되 ‘이상히도 생겼구나.맹랑히도 생겼구나.늙은 중의 입 일는지 털은 돋고 이는 없다.소나기를 만났던지 언덕 깊게 패여있다.콩밭 팥밭 지났는지 돔부꽃이 비치었다.도끼날 맞았는지 금 바르게 터져있다.生水處 沃畓인지 물이 항상 고여있다.무슨 말 하려는지 옴찔옴찔 하고있노?’ 옹녀 변강쇠 기물을 만지며 가로되 ‘이상히도 생겼네.맹랑히도 생겼네.송아지 말뚝인지 털고삐를 둘렀구나.뒷절 큰방 노승인지 민대가리 둥글리며 소년인사 다 배웠나,꼬빡꼬빡 절을 하네.’
판소리 묘미는 그 사설의 질퍽한 해학에 있음 새삼 느꼈다.이런 노골성은 ‘북회귀선’이나 ‘차타레이 부인’에도 없다.실루엩으로 그 풍경 보여주는데,누워서 다리를 쫙 벌린 여인에게 남자가 머리 디리미는데 폭소 않을 관객 없다.또 눈 앞에 다가온 팔뚝만한 기물을 여인이 손가락으로 건드리기도 한다.그 기물은 실물처럼 꺼떡꺼떡 절도 한다.우하하하!관중이 박장대소 않을 수 없다.
판소리는 가히 고사성어의 寶庫라 하지않을 수 없다.사설은 청산유수 장황한 고사성어와 민초들 귀에 익은 온갖 야하고 해학적인 말들로 풀려간다. ‘저 강쇠놈의 거동보라.도끼를 꽁무니에 차고 이 산 넘고 저 산 넘어 윈근 산천 바라보니 오색초목이 무성하다.마주 섰다고 향자목,입맞추면 쪽나무,방귀 뀐다고 뽕나무,상놈이라 상나무,십리 절반에 오리목,한다리 절뚝 전나무.원산은 첩첩,태산은 층층,낙수는 잔잔,이 골 물 출렁,저 골 물 솰솰,열에 열 골 물이 합수되어 저 건너 병풍석 마주 치니,흰 갈매기는 강물 위에 나르고,낙락장송은 벼랑 위에 섰고,흐르나니 물결이요,뛰노나니 고기로구나.’
이때 연기는 상징이다.사설이 중요하다.읊는 소리의 내용을 알아야 발성과 동작의 의미도 알아진다.판소리는 唱者와 악사와 관중이 다 참가하는 토종 오페라이기에 앞으로 연출자가 주의할 점은,반드시 판소리 공연은 관중이 미리 대본을 읽도록 배려해야겠다는 점이다.아니면 자막처리가 필요하겠다.대본 모르는 판소리 관람은 자막없는 외국 영화와 비슷하다. 마지막에 초상을 하도 치러서 많은 소복 중에 제일 예쁜 걸로다가 골라 입은 옹녀가 한길가에 퍼질고 앉아 우는 장면도 재미있었다.옹녀가 이렇게 하는 데는 남정네가 꼬여들어 송장 치워주면 새서방 삼으려는 속셈인 것이다.
끝은 <사랑가>였다.
‘사랑 사랑 내사랑이여,어화 둥둥 내사랑아! 태산같이 높은 사랑,바다같이 깊은 사랑, 직녀가 짠 비단같이 올올히 맺힌 사랑, 둥두둥둥 어화 둥둥 내사랑아.’
이때 가야금 타는 여인의 섬섬옥수는 손가락이 안보일만치 빠르다.경쾌한 리듬에 무대 위 모든 사람과 관중이 합창한다.판소리 끝나고 두 손 어깨 위에 올리고 두둥실 춤추며 돌아가는 옛 선조들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08년 12월)
수필가 김창현(金昌泫) 프로필
*진주고, 고려대 철학과 졸업*《문학시대》수필등단(2007)*청다문학회 회장. 남강문학회 부회장 *찬불가 가사공모 3편당선*불교신문·내외경제신문기자, 아남그룹 회장실비서실장, 아남건설상무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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