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자서전) 삼성산요 원로 선배 이선환 "91세에 가슴으로 쓰는 나의 인생 자서전"
"새로운 세상의 중심 언론" 시민방송뉴스통신용인 송선영 대표기자=
한국 전자산업 시초이자 삼성전자 창업 멤버의 한 분 의지와 집념의 한국인 표상이자 뛰어난 경제인 91연세에도 꿋꿋하시고 명 연설가 후배들이 본 받고 싶어하는 이상적 롤모델 선배상!!
1933년생/1956년 서울대 전기공학과 졸업 대한중석광업(주)입사/1959년 제일제당 입사/1964년 한양대 대학원 전기공학과 졸업/1968.8월 삼성물산 동경지점 근무(개발부장)/1969.5월 귀국 삼성전관 생산부장 이어 삼성산요 공장장(36세)/1972년 기술사(전기 발송 배전) 취득/1974년 삼성코닝 공장장/1977년 중앙개발 상무이사/1981년 삼성애버랜드 퇴사 후 효성중공업 상무/1987년 신성전자기업(주) 설립 대표이사/2023년 폐업
저자 이선환은 벽진이씨 34세대 손으로 경남 창령군 부곡면 부곡리 덕암산 자락이 출생지이다.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녔다.창녕은 어린 시절 순수함을 다듬어준 마음의 고향이고 어릴 적 동네 애들과 산과 들을 뛰어 다니며 칡도 캐어 먹고 계곡에서 가재도 잡아 구워 먹으며 자연을 만끽했다.여름철에는 으레 웃통을 벗고 개울에서 멱도 감고 쇠 꼴을 먹이며 하루 종일 들에서 보내곤 했다.이렇게 어릴 적 재미있게 놀던 방식이 훗날에는 공부,일,연애에도 적용이 되었다.공부,일,연애도 놀이처럼 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이 12살에 광복의 기쁨을 맛보고 1946년 시골 창령에서 부산의 명문 경남중학교로 가다.6킬로 교내 마라톤 대회에서 완주를 했고 마라톤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못 이룰 것이 없다는 중요한 교훈을 몸소 얻었다. 교내 웅변대회에도 두각을 나타내다.6.25가 발발하고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라 반공 포스트,반공 글 짓기.반공 웅변대회가 자주 열렸고 내용은 시기가 시기인 만큼 '무찌르자 공산당,때려잡자 김일성"등이었다.
영광의 서울 공대 합격,서울대학교 벽보에 붙은 "서울대 전기공학과 이선환' 이란 합격자 발표를 확인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드디어 1952.3월 꿈에 그리든 서울대에 입학을 하고 서울 제기동에서 자취를 했다.그리고 3학년떄 화천수력발전소로 실습을 갔다.그날 저녁을 먹고 바람 쐬려 밖에 나갔다가 느닷없이 '수하,암호'하는 소리에 "발전소 실습생 실습생이요"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가 초소 경비가 그냥 가라고 손짓하는 일도 있었다.
사회 첫 직장 -1956.3월 서울 공대를 졸업하고 때마침 한양대 대학원 전기공학과에 진학했다.그리고 이어 1957.7월에 대한중석광업(주) 공채시험에 합격하고 대구 달성광업소에서 실습을 받았고 발령은 강원도 영월 오지에 받았다.내가 맡은 전기계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지하에서 채광석을 권상기로 운반해 올려 선광과로 이송하는 일이었다.그리고 1959.4월 제일제당으로 전직하고 부산공장 공무과였다.1959.9월 사라호 태풍이 부산을 덮치고 공무과 사원으로 근무할 때인데 그때가 마침 추석이라 귀성도 못한 상황인데 갑자기 지붕이 날아가서 혼비백산했다.
1964.2월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논문이 패스했는데 논문 제목은 "경제적 견지에서 본 페증기 이용 발전"이었다.세월이 흘러 1968.8월 삼성물산 개발부장으로 동경지점에서 근무하면서 조용달박사를 모시고 현지 채용 재일교포 차강일씨와 함께 일본 전기회사와 제휴를 위해 동분서주했다.긜고 오사카에 있는 산요전기와 업무 제휴를 하고 라디오,스피커,FBT,DY,콘덴사를 생산했다.
" 삼성산요에서 오늘 날 삼삼회(회장 성재생) 회원들을 만나다"
1969.5월 귀국하여 삼성산요 초대 공장장을 역임하다(51페이지) 이때 현재의 삼삼회(회장 성재생/사무총장 송선영) 회원들을 만났다.삼삼회는 1969년부터 1977년까지 삼성산요에 근무한 임직원들의 모임으로 1994년 결성되어 금년에 설립 30주년을 맞이하는 참으로 유서 깊은 직장 모임이다.나는 영광스럽게도 작년부터 모임에서 초대를 받아 작년 그리고 금년 초 신년회에 참석하여 70여명 삼삼회 회원들과 교류를 이어가고 있고 금년 추석 즈음에는 삼삼회 회원들에게 나의 졸 저 자서전을 선물로 보내드렸고 나중에는 삼삼회 회장님 이름으로 귀한 홈삼 선물을 받았다.
삼성 그룹 고 이병철 회장님과 인연은 새롭기만 하다.1968년 말 일본 산요의 창업자이신 고 이우에 토시오께서 우리 이병철회장님을 초대했는데 장소는 교외 산간 깊숙이 위치한 별장이었는데 주안상에 놓인 금은 잔이었다.또 한가지는 1969년 정월 아침 일본 동경 어느 곳에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오전 8시 이전에 31층 사무실에 일찍 출근을 했는데 이병철 회장님이 사무실로 먼저 와 계셨던 것이다.
1972년 11월 과학기술처가 주관하는 전기분야 기술사 시험 최종 합격자 26명 중에 한 명이 되다.현재 우리나라에는 297명의 기술사들이 있다.그리고 1999년 3월 삼성입사 2기 9명이 부부동반으로 중국 삼성 천진공장으로 방문했다.방문 중 첫 날은 삼성모니터 천진공장을,둘째 날은 삼성시장 천진공장을,마지막 날은 6.352킬로 만리장성을 다녀왔다. 그리고 2006.9월에는 삼성성우회 일동 80명이 말레이시아 소재 삼성그룹 현지법인과 트윈타워와 삼성복합단지 그리고 말라카를 견학하였다.
군번 1호,1964.1월부로 한비(한국비료공업,현재는 삼성정밀화학) 1호 사원으로 발령받는데서 연유한다.1968.3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회사를 방문하여 대면하고 당시 공무부장으로 직접 악수를 하였다.
1987년 2월 54세때 새로운 결심으로 전기전자부품을 생산하는 신성전자기업(주) 설립하고 삼성전자 협력업체 등록을 했다.그리고 UL,ISO9001,싱글 PPM인증등 각종 인증을 받았다.또한 실용신안 4건 등록과 자동조립기도 개발했다.사업을 하면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본은 유지하지만 베품을 또 하나의 축으로 여겼다.사업을 하면서 참으로 바쁘게 살아오다 2023.3월 공식적으로 회사를 페업했다.만 36년을 사업 영위를 했다.
90평생을 살면서 취미는 바둑과 등산 두 가지다.바둑을 좋아하는데는 3가지 이유가 있는데 수의 무한함,예를 배운다 그리고 무리한 욕심을 부리면 안된다 이다.
가장 멋진인생은 첫째는 인생의 부름에 답하는 삶이다.그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영혼의 부름에 답하는 삶을 말한다.두번째는 심리적으로 젊게 사는 삶이다.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마지막 세번째는 늘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면서 포용력과 통찰력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이상으로 165페이지에 달하는 나의 자서전 얘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돌아보면 아름답고 감사하다.부모님과 가족들 또한 수많은 선배,후배와 동료들과 협력자들의 도움으로 살아왔다.이 자리를 빌어 감사 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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