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훈만정음 기념사업회 이사장 박재성 칼럼 ‘훈민정음해례본’을 보면 훈민정음의 '탄생과 성장'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훈민정음해례본’이라는 책을 국보로 지정했고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는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러나 ‘훈민정음해례본’이라는 책은 한글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문자인 ‘정음’의 탄생과 성장을 살펴볼 수 있도록 쓰여 있다.
유사 이래 문자라는 것은, 어떤 사실에 관한 이야기의 결과물이다. ‘로제타 스톤(Rosetta Stone)’이나 ‘광개토대왕비’와 같이 돌에 새겨져 있거나 혹은 갑골문처럼 소 같은 짐승의 뼈나 거북이 껍질에 새겨진 모습이거나 파피루스든 대나무 단편이든 문자란 항상 어떤 일에 관해 이야기로서 역사 속에 나타나는 존재였다. 그런 의미에서 문자란 읽는 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과거의 이야기로서 읽게끔 하는 역사다.
그에 비해 ‘훈민정음해례본’은 목판에 새겨지고, 종이에 인쇄되고, 제본된 책의 형태로 인류 문자사에 등장했다. 이 책에는 ‘정음’이 누구를 위하여 어떠한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정음의 구조는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정음은 이렇게 쓰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정음’ 자신이 어떠한 문자이며 자신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유감없이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이 훈민정음해례본의 마지막 부분에서 정인지는 “바라건대 정음을 보는 자여, 스승 없이도 스스로 깨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쓰여 있다.
이와 같이 훈민정음해례본이라는 책은, 그것을 펼쳐 읽는 이에게 문자의 탄생이라는 원초적 모습 자체를 만나게 하고 경험하게 하는 장치다.
물론 훈민정음해례본 역시 과거의 책이며, 과거의 역사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순간 그곳에 나타나는 것은 단순한 과거에 이야기된 역사는 아니다. ‘훈민정음해례본’이라는 책은 그 존재 방식 자체가 세계 문자사상 비교할 데 없는 비치는 빛살을 발하고 있다.
문자의 원초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훈민정음해례본은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문자의 원초와 문자의 삶을 가르쳐 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언어와 문자를 둘러싼 수많은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그것은 ‘음이 문자가 된다’는 것과 ‘말이 문자가 된다’는 원초가 항상 읽는 이 자신에게 ‘지금 이곳에서’의 사건으로서 생겨나는 역사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정음을 보는 일은 세계의 이미 존재했던 수많은 문자 중 하나를 본다는 사실을 넘어 인류의 문자로서 우리 앞에 존재한다는 것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정음’이 탄생한 지 580년이 지난 후에 경북 안동의 긍구당이라는 고택에서 나타난 ‘훈민정음해례본’은 동방의 극점에 나타나 준 인류 문자사의 보물이고 기적이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말이란 무엇이고, 인간에게 있어 문자란 무엇이며 앎이란 무엇인가라는 보편적 질문에 대해 세상의 온갖 소리가 문자로 표현되는 기쁨과 함께 문자의 깨우침에서 얻어지는 인간성 회복에 대한 답을 제시해 주는 흔하지 않은 기적이다.
사단법인 훈민정음기념사업회 이사장 교육학박사 박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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