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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급 "인문학 천재 '무애 양주동' 박사" 묘를 용인 공원묘원에서 발견하다

  • [시민방송뉴스통신(용인)]
  • 입력 2025-02-02 22:28
  • |
  • 수정 2025-02-05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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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애 양주동 박사 초상화-용인소식 제공)

 

   '새로운 용인 르네상스 희망을 말한다'

   


 (용인소식 1월 호)

 

   무애 양주동 (1903-1977)

경기도 개성 출신-신라 향가등 한국 고가 연구에 큰 업적을 남김

1928년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해 평양 숭실전문하교 영문학 교수로 취임/1945년 동국대 교수로 종신 근무/1954년 대한민국 학술원  종신 회원/ 1958년 연세대학교 교수로 잠시 재임하고 문학박사 학위 받음/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여 

양주동의 걸작 '여요전주'와 가시리 평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양주동은 고려시대의 가요를 수집하여 풀어낸 '여요전주'를 썻다.고려가요 '가시리'를 풀어낸 현대적 평설은 이 땅에서 나온 최고의 문장으로 꼽혀온 작품이다. 

중동학교 1년 만에 수석 졸업한 천재 




용인소식 1월 호(발행인 용인특례시장,Vol.295)에 따르면 무애 양주동 박사의 묘가 용인공원묘원에서 발견되었다.

개성 출신으로 두 살때 황해도 장연으로 이사를 오고  6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2살 때는 어머니마저 잃는다.열살 때 보통학교 3학년에 입학하는데 이때 어머니와 함께 대학을 읽었다.1920년 18살 때 서울로 와서 치열한 면학끝에 중동학교를 단 1년 만에 수석 졸업하고 최 우등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고 1921년 일본 와세다대학 불어불문과로 입학하고 1925년 동 대학 영문학과로 전과를 했다.그리고 1928년 귀국하여 평양 숭실전문학교 영문학 교수로 부임하는데 이때가 그의 나이 26세였다. 

양주동 박사의 묘는 현재 '용인공원묘원'에 모셔져 있는데 용인에는 이토록 거대한 국보급 인문학 천재가 있어니 '용인 문학 르네상스의 상징'이 아니겠는가.

 


 양주동 박사

 


  양주동 박사의 묘가 있는 '용인공원묘원' -사진 용인소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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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선영 기자 ssys195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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